드비어스 설립과 변화

▶ 드비어스의 유래

드비어스란 원래 원주민 형제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즉 De Beers J. N과 De Beers D. A(Johannes Nicholas and Diederik Arnoldus De Beers)

형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느 농장을 단돈 50파운드에 매입했는데, 1871년 우연히 그 농장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다.

드비어스 형제는 이 농장을 다시 매각하게 되었고 매각하는 과정에서 ‘드비어스 광상’으로 영구히 불리워지길 요구하면서 오늘날의 드비어스란

이름이 생겨나게 된다.

▶ 드비어스(De Beers)의 설립

영국 출신의 쎄실 로즈(Cecil J. Rh-odes : 1870~1902)는 1888년 킴벌리 지역의 모든 다이아몬드 광산을 소유했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드비어스

연합 광산회사(De Beers Consolidated Mines Ltd.)를 설립하였다. 그는 다이아몬드 산업의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고, 그의 영향력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수년 동안 지속되었다.

1900년에는 드비어스가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생산량의 약 80~90%를 통제했었다. 드비어스는 현존하는 모든 광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

했기 때문에 다이아몬드의 가격을 보호하고 시장의 안전성을 유지한다는 취지아래 다른 생산자들로부터 원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 대공황

어니스트 오펜하이머(Ernest Oppen-heimer : 1880~1957)는 1929년 재정난이 세계와 다이아몬드 산업에 덮쳤을 때 드비어스 회장에 취임했다.

미국 주식 시장은 폭락했고, 거의 10년간의 대공황으로 인하여 다이아몬드의 수요는 거의 바닥에 다다랐다. 수많은 광산 회사들이 파산했고, 드

비어스는 긴축재정을 하여 파산된 회사들을 사들였다. 점차적으로 드비어스는 정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모든 남아프리카 생산의 통제권을 갖

게 되면서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었다. 다이아몬드 산업은 수년간 계속된 대공황의 여파를 느꼈다. 광산을 폐쇄하고서도 1935년 드비어스는 팔

리지 않은 다이아몬드 5천6백만 달러를 보유하였고 세계 판매량은 연간 1,500만 달러에 멈추었다. 판매는 곧 다시 오르기 시작했지만, 드비어스

는 1944년까지 광산을 폐쇄시켰다.

▶ 세계 제 2차 대전

드비어스는 1940년대 세계 제 2차 대전이 발발 했을 당시, 공업용 다이아몬드 공급의 세계적인 주요 공급원이었다. 전쟁기간 군사 장비의 생산

이 공업용 다이아몬드 원석의 수요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때 드비어스는 수요를 관리하기 위해 공업용 다이아몬드 부서를 설립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보석용의 다이아몬드 시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다이아몬드의 판매는 꾸준

히 증가했다.

▶ CSO(중앙판매기구)

전 세계의 광산으로부터 산출된 대다수의 다이아몬드 원석은 단일 기관으로 영국 런던에 위치한 중앙판매기구(CSO : Central Selling Organiza

tion)에 의해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드비어스는 CSO를 통하여 세계의 천연 다이아몬드를 모으고 분류하여 5,000여 종류로 나누었다. 1939년 시

작된 CSO의 시스템은 평균 36일을 기준으로 하여 매년 10번씩 일주일간의 사이트(Sight)라 부르는 유통 이벤트가 열리며, 사이트홀더(Sighthol

der)라는 자격을 지닌 초대된 사람들에게 판매가 되었다. 드비어스가 사이트홀더를 지명하는데 세계적으로 적게는 120명, 많게는 300명 정도에

이르렀다.

▶ 다이아몬드 시장의 변화

드비어스는 CSO에 대한 재정적 지지로 1990년대 중반까지 수요가 없는 크기와 품질의 다이아몬드까지도 사서 비축했었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

서 원석의 양이 증가한 만큼 다이아몬드의 수요는 늘지 않았으며, 드비어스의 막강한 재정 능력조차 더 이상은 구매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직

면하게 되었다. 이 때 드비어스는 시장의 수요에 비례해서 매매하기로 하는 드비어스와 생산자 사이의 계약을 의미하는 쿼터 시스템(Quota syst

em)을 내 놓았다. 이러한 쿼터 시스템에 의해 광산업자들은 상당한 양을 드비어스가 아닌 다른 곳에 판매할 수가 없었고 협정에 따라 후에 드비

어스가 광산업자들의 다이아몬드를 구매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협의는 호주 아가일과 CSO의 결별로 인하여 좌초될 위기에 놓인다.

아가일은 생산의 75%를 CSO에 판매했고 나머지는 벨기에의 엔트워프에 있는 자체 사무실을 통해서 판매했다.

이렇듯 CSO는 지배적인 다이아몬드 공급자로서의 드비어스의 위치를 유지하는 듯 하였으나, 1990년대 세계적인 경제불황과 구 소련의 붕괴 후

대부분 러시아산의 작은 크기의 다이아몬드 대량 유통으로 드비어스는 아가일 다이아몬드의 구매를 미루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아가일은 드비

어스와의 계약으로 위탁된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를 재고로 떠안아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96년 아가일과 CSO의 협의는 붕괴되기에 이

르렀다. 아가일 광상의 소유자들은 독립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더 수익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드비어스는 아가일과 결별 후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그리고 보츠와나에 있는 고수익성 광산으로 인해 계속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시장에 많은 영

향력을 발휘하였으나, 러시아와의 계약 협상이 점점 어려워지고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광산발견으로 인하여 드비어스에게는 한층 더 복잡한 문

제가 되었다. 한때 드비어스는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판매량의 절대 다수를 판매하였으나 1990년대 말, 그 수량은 약 60%로 떨어졌다. 그리고 캐

나다에서 드비어스 소유가 아닌 여러 광산들의 자체 공급으로 인하여 드비어스의 영향력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드비

어스는 수십 년간 지켜왔던 사업의 방식을 바꾸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DTC의 탄생

1999년 1월 드비어스는 회사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과거 원석의 공급사에서 소매샵으로 개념의 변화) 컨설팅 회사와 함께

드비어스는 전반적인 회사 운영 전략의 재검토를 하였다. 이러한 재검토의 결과로 드비어스는 2000년 중반에 CSO를 DTC(Diamond Trading Co

mpany)로 새롭게 명명한다고 발표하였다.

사이트는 주로 영국 런던에서 열리며 규모가 작은 사이트들은 스위스의 루체른과 남아프리카의 킴벌리에서도 열린다. 사이트홀더의 대부분은 다

이아몬드 연마사들이거나 딜러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이트에서 판매된 다이아몬드 원석은 벨기에, 이스라엘, 인도, 미국 등의 연마센터로 보내어

지고 연마된 다이아몬드는 주얼리 제조회사나 도매상에게, 도매상들은 소규모의 제조업자들이나 주얼리 소매상들에게 판매된다.

또한 드비어스는 “Forevermark(다이아몬드안에 별이 새겨진)’라고 불리는 새로운 로고를 발표했다. 그것은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슬로건을

상징하고 회사의 새로운 소비자 홍보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었다. CSO의 명칭 변화는 표면적 변화 그 이상이다. 사이트홀더에게 함께 일할 것을 요

구하는 회사가 아니라 사이트홀더가 함께 일할 것을 선택하는 회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공급을 조절하는 대신 수요를 증가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 목적의 중요한 부분은 드비어스와 사이트홀더가 다이아몬드 거래

와 판매를 위해 함께 일하는 선택된 공급업체(SOC : Supplier of Choice)프로그램이다.

100여년에 걸친 다이아몬드 시장 독점체제 붕괴

드비어스와 러시아 알로사 사이의 ‘독점적 제휴’관계가 끝나게 됨으로써 드비어스의 100여년 동안 계속된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독점 체제가 무

너지게 됐다. 유럽연합(EU) 당국은 2006년 2월 27일 영국에 본사를 둔 드비어스가 알로사(Alrosa)의 생산 물량을 독점적으로 구매해온 것을 ‘불공

정 거래’로 판정해 2009년까지 두 회사 간의 거래를 전면 중단시켰다.

세계 2위 생산국인 러시아의 국영 독점기업인 알로사는 1960년대부터 일부 국내 수요를 제외한 전량을 드비어스에 공급하면서 이런 독점 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드비어스에 도전하는 대신 손잡고 함께 독점을 즐기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동안 드비어스와 알로사는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좌

지우지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드비어스와 알로사는 서로 경쟁하게 됐다. 알로사는 올해부터 드비어스에 대한 공급을 점차 줄이고 직접 세계 시

장에 다이아몬드 원석을 팔 계획이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드비어스와 알로사의 독점적 제휴 관계가 무너지면서 앞으로 다이아몬드 가격

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드비어스의 랄프 이사 “시장 점유율보다는 다이아몬드의 질을 개선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

1998년부터 2001년 사이 드비어스는 시장점유율이 48%로 줄고 상장을 폐지하며 사업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다. 드비어스

는 다이아몬드 공급을 조절하는 사업방식에서 수요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으며 또한 요하네스버그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에서 상장을

폐지해 사기업화 됐다.

1998년부터 최근까지 드비어스의 대표이사를 역임하면서 드비어스의 변화를 이끈 게리 랄프는 “물론 예전의 사업 방식이 훨씬 편했던 것은 사실”

이라며 “사업상 실수를 하면 최대 주주인(광산업체) 앵글로아메리칸으로부터 받는 배당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리스크가 적었기 때문이

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사기업화보다 더 큰 변화는 드비어스가 앵글로아메리칸의 계열사였다가 분리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의 정체성

을 재정립해야 했고 그 결과 새로운 사업모델을 정립하게 됐다는 것이다.

랄프 이사는 “새로운 모델 밑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세계 경제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으며 대신 적극적으로 시장을 움직이고 수요를 조절해야 했다.”

고 전했다.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 시장 점유율이 현재 많이 떨어졌지만, 공급보다는 수요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에 따라 드비어스에게 시장 점유율은 중요하지

않다. 드비어스는 시장 점유율보다는 보석의 질을 개선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랄프 이사는 밝혔다.

랄프 이사는 “이를 위해 다이아몬드의 수요를 촉진해 가격을 올리고 앙골라, 콩고, 캐나다 등에서 최고급 다이아몬드를 채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고 밝혔다. 그는 또 “누군가가 소비자들에게 여행이나 명품 핸드백 대신 다이아몬드를 사도록 설득해야 한다”며 마케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90년대에 다이아몬드의 불법거래가 아프리카 내전을 부추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드비어스가 도마에 오른 이후 회사는 투명한 경영을 지향하면

서 이미지쇄신에 힘쓴 바 있다. 드비어스는 지금도 당시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랄프 대표는 “드비어스는 작은 시장에서 큰 존

재였기 때문에 비판과 시기의 대상이 돼왔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다이아몬드 시장

21세기로 들어선 지금 다이아몬드 업계는 그 어느 곳 보다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앞서 설명 하였듯이 100여년에 걸친 다이아몬드의 독점 시장이 무너

지고 있으며 다이아몬드가 자유 경쟁 체제로 들어서면서 시장은 더욱 복잡해 졌다. 바이어들은 원석을 살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졌고, 원석 구입과 취

급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면 얼마든지 이윤을 추구할 수 있게 원석 시장이 탈바꿈되고 있다.

다이아몬드 자유 경쟁 시대의 진입은 구입 경로가 다양해지고 기존 시장의 변화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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